따뜻한 성품으로 바꾸는 법 (2)
신상래
크리스천 재정관리 상담센터 소장
변화되지 않는 크리스천은 한마디로 성령의 내주하심이 없어서이다. 성령이 마음 안에 들어와 거주하시면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성령의 감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따뜻한 성품으로 변화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희생적인 신앙행위에 열심이라 하더라도 성품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성령의 충만하심을 유지하지 못한 결과이다. 물론 성령의 내주하심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따뜻한 성품으로 자동적으로 바꾸어지지 않는다. 성령은 끊임없이 부족한 성품에 대한 찔림을 주시며 책망을 하신다. 그러기에 좋든 싫든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성령이 내주함이 없다면 그런 찔림도 경험하지 못하고 깨달음도 없다. 그렇기에 먼저 성령의 충만하심을 간절히 구하고, 성령 충만을 유지하고 있다면 소멸되지 않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쉼 없는 기도로서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다면 부족한 성품에 대한 찔림과 책망이 계속될 것이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대략 두 가지이다. 그냥 무시하거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만약 음식물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시간이 지나도 꺼내는 것을 잊고 있다면 꺼낼 때까지 계속해서 경고음이 울릴 것이다. 꺼내고 싶지 않더라도 계속 시끄럽게 울어대니 결국은 꺼내게 된다. 물론 전원을 꺼버렸다면 경고음도 없겠지만 말이다. 이같이 성령의 내주하심이 유지된다면 부족한 성품에 대한 경고음이 계속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고치는 것도 쉽지 않은 노릇이기에 무시하며 지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성령이 내주하고 있다면 고치지 않고 배기지 못한다. 결국 고치는 시도의 결정은 본인이 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성령이 하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 또한 성령이 내주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과 자비, 불쌍히 여기는 성품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래서 까칠하고 냉랭한 성품을 따뜻하고 사랑이 풍성한 마음으로 바꾸려는 기도를 간절히 하게 된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으로 마음이 훈훈해지고 성품이 너그러워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부족한 성품을 성공적으로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성령의 찔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본인의 자세에 달려있다. 성령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성령의 명령을 듣게 된다. 그 명령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따르게 되는 행위를 계속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변화하는 된다. 필자도 까칠하고 시니컬한 성품이 적지 않아서 불쌍한 사람들을 보더라도 그냥 지나치곤 했는데, 어느 새부터인가 이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성령의 요청을 듣게 되었고 그 뜻대로 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다 보니 많이 변화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 있었다. 성품을 바꾸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전지전능하신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면 불가능한 일도 없다. 다만 성령과 깊이 교제하며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부족한 성품을 바꾸는 열쇠가 될 것이다.
3. 작은 일부터 시작하라.
남을 배려하고 불쌍히 여기며 베풀며 나누어주는 성품은 선천적일까 아님 후천적일까? 남자보다는 여자가 이러한 성향이 많으며, 사랑이 넘치고 자비로운 성품을 DNA로 갖고 남을 대접하는 것을 즐기고 나누어주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이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성품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만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선행을 보고 자란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전철을 밟게 되며, 불우하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지독한 가난을 체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불우한 이웃을 더욱 이해하기 쉽다. 최적인 조합이라면 선천적으로 이러한 성향을 타고났으며 후천적으로 관대한 부모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성인된 사람들은 지나간 과거를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자신의 노력으로 이기적이고 냉랭한 성품에서 베풀기 좋아하며 사랑이 넘치는 성품으로 바꾸는 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미 오랜 시간 굳어진 성품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신문을 펼쳐들면 평생 모은 재산을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쾌척했다는 기사가 가끔씩 실린다. 필자가 졸업한 대학교에도 시장 모퉁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수십 년 동안 김밥을 판 할머니가 못 배운 한을 남기고 싶지 않아 이 땅을 떠나면서 평생 모은 재산을 장학금으로 남겼기에, 대학에서 그 이름을 딴 건물을 지어 많은 이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어떤 가수는 자신은 전셋집에 살면서도 평생 동안 수십억을 자선사업에 바친 이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보통 서민들인 우리들은 먹고 살기도 버겁기에 그런 선행을 꿈꾸지 못한다. 그렇지만 작은 일부터 시작할 수는 있다. 한 달에 만원씩 불우이웃을 돕는 자선기관에 보낼 수도 있고, 지역의 소년가장이나 독거노인들을 돕는 일에 짬짬이 시간을 내어 자원봉사를 할 수도 있다. 파지를 줍느라 추위에 떠는 할아버지에게 따뜻한 커피한잔을 자판기에서 꺼내주는 일은 마음만 있으면 되고, 재래시장 한 귀퉁이에서 시골의 텃밭에서 기르던 야채를 파는 쪼그랑할머니를 불쌍히 여겨 몇 천원 어치 사주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실 그러한 일은 큰돈이 필요 없으며 자그마한 관심만 있어도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바쁘게 사느라 불쌍하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관심조차 없다. 불쌍히 여기는 성품을 마음속에만 지니고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작은 일을 실천하는 데서 마음이 넉넉해지며 더 큰일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법이다.
불쌍히 여기는 성품은 돈이 없어도 되는 일이 적지 않다.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가족을 부양하느라 회사업무에 피곤에 지친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이 측은해지는 일은 돈이 없어도 된다. 그러면 따뜻한 말 한마디로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하다 밤늦게 귀가하는 자녀에게 좋은 성적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며 등을 토닥여줄 수도 있다. 청춘의 나이에 시집와서 남편 뒷바라지와 자녀들을 낳아 기르고 시부모를 모시느라 온갖 고생 끝에 흰머리가 늘어나고 잔주름이 패인 아내를 지그시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힌 적이 있는가? 아무 말 하지 않더라도 슬그머니 손이라도 붙잡아준다면 이보다 감동적인 장면도 없을 것이다. 사실 이런 일들은 돈이 없어도 되며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단지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랑스런 마음을 표현하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다가 아쉽게도 기회를 아주 잃어버리는 일이 많다. 비록 쑥스럽더라도 생각이 나면 즉시 시행에 옮기도록 하여야한다. 사랑을 감추며 살기에는 우리네 인생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4. 상대방을 이해하는 습관을 길러라.
교차로에서 파란 신호등이 바뀌었음에도 급하게 출발하지 않는 앞차를 보면 한순간을 못 참고 경적을 울려대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그 차의 주인이 몹쓸 병으로 앓던 아내를 가슴에 묻고 돌아오는 남편일지 모른다. 자신의 삶이 너무도 허망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눈시울을 훔치다 신호등을 미쳐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