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1976 in Chicago
 
English Vision Center 교회 안내
소개 SITE INDEX
 
  HOME 말씀 행사/소식 교육 전도/선교 구제/봉사
 
 
 
  병원 선교 (3) - 유현목
  글쓴이 : 가나안교회 날짜 : 10-03-03 14:26     조회 : 58    
 

병원 선교 (3)

유현목


  전도와 더불어 병실 예배를 인도하는 사역이 그날 이후로 계속됐다. 4인 병실에 20∼30명의 환자와 보호자가 모여 예배를 보니 소동이 일어났다. 믿지 않는 환우와 보호자들이 병실을 소란시킨다며 병원측에 항의하는 바람에 3개월간 병원 출입을 금지당했다.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다. "하나님 이 일을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그때 분명한 성령님의 음성이 들렸다.

  "이 병원에 내 백성이 많으니 너는 쉬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

  이 음성을 듣고 지혜가 떠올랐다. 산업현장에서 재해를 당해 하반신 장애를 입어 장기 입원해야 하는 김용석 환우가 있었다. 그에게 예배 인도를 맡겼다. 예배순서를 만들고 설교 원고를 써서 그에게 줬다. 그가 예배를 잘 인도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 병원 간호감독이 환우들이 예배하는 현장을 둘러보게 됐다. 어떻게 환자들만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지 궁금해 환우들에게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 환자들이 "왜, 우리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예배 인도자 유현목 전도사를 병원에 출입 못하게 하느냐"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유롭게 환우들에게 예배를 인도할 수 있게 됐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 할렐루야!"

  1984년 초 혈액암으로 투병하던 18세 여고생을 병실에서 만났다. 주로 토요일 오후에 이루어진 병실 전도를 통해 만난 그녀는 또렷한 목소리로 주님을 영접했다.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내 죄를 위해 돌아가신 주님을 이 시간 내 영혼의 구세주로 영접합니다."

  다음날 그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십자가 형장의 한 편에 섰던 강도처럼 그녀는 구원을 받았다. 병원선교의 현장은 이렇게 삶과 죽음의 문턱을 드나든다. 구원을 사모하는 많은 영혼이 있는 복음 전파의 황금어장인 셈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병원선교 현장에서는 기적이 일어나곤 했다. 확신에 차 말씀을 전하면서 드러나는 귀한 열매인 셈이다. 2000년 전 오래된 십자가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의 현장에서 구원받는 체험을 하곤 한다.

  1987년 봄의 일이다. 경기도 수원 산업도로에서 신호를 대기하고 있던 40대 임병무씨가 8톤 덤프 트럭에 치여 강남성심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 장래가 유망한 엔지니어였다.

  '두개골 골절, 고도 뇌 좌상, 좌측 다리 분쇄골절.'

  의식불명이고 호흡곤란 상태로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 장례를 준비하라는 병원측 설명에 임씨의 부인은 울고만 있었다. 묏자리를 준비했다. 하지만 곧 죽을 줄만 알았던 그는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길 몇 달. 임씨의 부인은 병실 밖에서 나는 찬송소리에 이끌려 병원 예배에 참석하게 됐다. "12년 환자도 예수의 소문을 듣고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게 됐습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말씀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긍정의 변화로 생각이 바뀌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은 그녀는 곧바로 성경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두 달 동안 3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삶의 변화를 경험했다. 거듭난 것이다. 거듭나니 꽃도 풀도 바람도 다 아름답게 보였다고 간증했다. 세상 만물이 다 주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고 했다. 마음이 편하니 갖고 있던 온갖 지병들도 신기하게 치유됐다. 무엇보다 그녀의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됐다.

  병원 선교를 시작할 무렵. 우리 모임을 귀히 여기시던 장로님 한 분이 사무실 구입비용으로 500만원을 헌금해 주셨다. 병원 가까이 건물 4층을 임대했다. 주일 예배 장소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런 그곳에 그녀가 찾아와 첫 번째 등록 교인이 됐다. 88년 봄의 일이다. 그녀는 서울 신림4동에서 대림3동까지 40∼50분을 걸어 새벽 예배에 참석하는 열심을 보였다.

  은혜 받은 그녀는 병실예배에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자신의 딸을 인도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곤 했다.

  그녀의 한 친척이 볼일 차 서울에 왔다가 병원 예배에 참석하게 됐다. 그 친척은 "인생이 3개월 만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느냐"며 탄복을 했다. 3개월 전에 만난 그녀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 식사, 손님 접대, 문서 선교 등 그녀의 손이 안 미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병원 선교의 역군이 됐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금상첨화'라고 할까. 그 후 그녀의 남편도 놀랍도록 몸이 회복됐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1년 만에 소생이 불가능한 사람이 다시 살아나 직장에 복귀하고 정년까지 채우는 은혜를 받았다.

  나는 교회 아닌 교회를 하게 됐다. 병원선교를 하려고 서울 대림동에 들어왔는데 퇴원 환우와 보호자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이색 교회가 된 것이다. 병원선교회가 조금 다른 모양의 교회가 탄생됐다.

  우선 손이 갈 일이 많아졌다. 산업재해 환자는 산재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교통사고 환자는 사고 처리와 치료 후 보상 문제로 보험회사와 다툼이 생겼다. 환자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보며 나름대로 책도 보며 귀동냥도 하며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환자들의 문제를 진지하게 풀어 나갔다. 그러자 환자들은 퇴원한 뒤에도 자연스레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됐다.


  병원선교회가 발전한 교회는 실명자, 지체장애자, 뇌손상 입은 사람 등으로 구성됐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은 시간을 볼 수 없어 음성 안내가 되는 손목시계를 찼다. 낮 12시 설교가 시작되면 이를 알리는 음성 메시지가 예배실에서 울린다.

  “지금 시각은 12시 정각, 12시 정각입니다.”

  그 소리에 나도 웃고 교인들도 웃는다. 무슨 예화를 하나 사용하면 머리를 다쳐 장애가 생긴 교인이 손을 들고 “옳소. 옳소. 목사님 말씀이 옳습니다”라고 외쳐 예배 분위기가 엉망이 되기도 했다.

  아픈 다리를 끌고 4층 교회까지 나왔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다시 골절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저렴한 임대료 때문에 4층까지 올라왔는데 승강기가 없어 이런 일들이 일어나니 당황스러웠다.

  일주일 내내 아픈 다리를 끌고 돌아다니는 교인이 있었다. 새벽 총알택시에 치여 심한 뇌손상이 오고 좌우측 다리에 분쇄 골절을 입어 1년 이상 입원해 있던 환우였다.

  퇴원 후 병원예배 인도하는 전도사가 서울 대림동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교회에 찾아왔다고 한다. 그는 다치기 전 족보의 달인이었나 보다. 예배를 마치고 식사시간에는 어김없이 식사하는 교인들의 족보를 캐내기 시작한다.

  “성씨가 무어냐?” “본이 어디냐?” 내가 “유씨”라고 대답하면 “유관순 유씨라고”하며 유관순에 대하여 역사적 사실을 열거하는 열변을 주일마다 계속한다. 이씨는 모두 충무공 이씨. 김씨는 김유신 김씨. 모든 교인이 이 족보에 들어 있어야 했다.

  한 번 정도는 재미있는데, 새롭게 교회에 나온 사람마다 그런 식으로 질문을 해대는 바람에 초신자가 난감해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일주일 내내 공중전화 박스를 돌며 다 쓰고 버린 전화카드를 수거하고, 전화기의 남은 동전을 꺼냈다. 사람들이 100원을 넣고 공중전화를 하다 30원이 남으면 전화기를 걸어두지 않고 그냥 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70원 잔돈을 넣고 100원을 꺼내 30원 차액을 챙겼다. 또 헌 전화카드 100장을 모아 전화국에 갖다 주면 2000∼3000원 짜리 새 카드를 주는데 그걸 다시 되팔아 저축을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교회에 오는 주일날이면 예배 후 식사가 있음을 알고 하루 이틀 전부터 밟을 굶는다. 그리고 식사시간에는 네댓 그릇 밥과 반찬을 뚝딱하니 그를 아는 사람은 이해하는데 초신자들은 그런 성도의 모습을 보고 교회를 외면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거액의 헌금을 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서툰 글씨로 감사의 내용을 써서 50만원을 헌금했다. 그게 그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마지막 헌금을 드리고 노숙자의 숙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오! 하나님.

  병 때문에 병원에서 만나 은혜 받고 신학교 가서 신학을 하던 이준혁 형제가 있었다. 은혜 받은 곳에서 봉사해야 한다며 주일 오후마다 병원예배 찬양을 인도하던 형제였다. 그의 결혼식 때 주례를 섰다. 1년 후. 그는 자신의 아내가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장례를 집례했다. 병원선교의 아픔이다.

  입원 환자 중 많은 사람은 교통사고 환자와 산재 환자들이었다. 그들은 몸도 몸이지만 법적 처리 문제로 곤란을 겪었다. 나는 산재와 교통사고 처리에 관한 책도 보고 주변 경험을 귀동냥해서 그들의 입장을 옹호해 주었다. 고문 변호사를 세워 열심히 서류를 준비하고 증인들을 만나 설득하고 6개월에서 길게는 2∼3년에 걸친 소송이 끝나면 그 날 이후로 그 사람들이 보이질 않았다. 그때마다 특수 목회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곤 했다.


  새벽 미명에 전화벨이 울렸다. 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전도사님! 순천향병원으로 와 주세요. 우리 사위가 교통사고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기도해 주시면 살 것 같으니 빨리 와 주세요!"

  청각장애인 딸과 사위를 둔 여집사님이었다. 딸이 임신 5개월이었는데 비오는 새벽에 사위가 서울 동부이촌동 강변도로를 달리다 차가 전복된 것이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사위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고 냉동실로 옮겨진 뒤였다. 그런데 이 일을 어찌하랴. 집사가 사위를 살려달라고 떼를 쓴다.

  "우리 전도사님 오실 때까지 냉동실로 옮기지 말라고 했는데. 왜 냉동실로 옮겼느냐…."

  나는 냉동실로 안내를 받았다. 시체를 꺼내라고 집사님이 아우성을 쳤다. 전도사님이 기도하면 우리 사위가 분명히 살아날 것이니 기도해 달라고 강권하면서 말이다. 그 집사는 그런 믿음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만한 믿음이 없었다.

  냉동실에서 시체를 꺼내니 너무나 깨끗했다. 외상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전복에 의한 쇼크로 사망에 이른 것 같았다. 시체를 꺼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순간 말씀으로 기도해야겠다는 깨달음이 왔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26)라고 말씀하신 주님. 여기 사위가 죽어 안타까워하는 장모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옵소서. 함께 만날 부활의 날을 소망하며 우리 모두 예수 잘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전도사님이 기도하면 분명 우리 사위가 살 것"이라고 우기던 여집사는 스스로 이렇게 말을 했다.

  "사위가 응급실에 있을 때 전도사님이 오셨으면 분명히 살았을 터인데…. 냉동실로 옮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이다.

  그만한 믿음이 없었던 나에게 하나님이 피할 길을 열어 놓으셨던 것이다. 이후 그 여집사님도 지병으로 입원했다. 그리고 병원 예배에 참석하게 됐는데 환자복을 입고 드린 예배에서 큰 은혜를 받고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됐다.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 (스가랴 2:5)
ⓒ2004 Canaan Presbyterian Church. All rights reserved.
1424 Greenwood Road, Glenview, Illinois 60025-1512 T:(847)724-2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