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소금 같은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법 (2)
신상래
크리스천 재정관리 상담센터 소장
2.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라.
삼십년 가까이 곱게 길러준 부모 곁을 떠나 자신과 평생을 같이 살겠다고 왔다면, 아마 세상에 배우자처럼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꽃다운 청춘을 자신에게 바치고 남편은 남편대로 평생을 자신보다 더 아끼고 사랑해줄 반려자로 받아들였다. 이는 서로를 가장 소중한 사람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내는 남편만을 위해 헌신하는 신분이다. 행복하고 따뜻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날이면 날마다 식사준비와 청소는 물론이고 빨래는 평생해도 표가 나지 않는 일이다. 게다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또한 시부모를 모시고 산다면 그 희생은 삶의 전부를 드리는 일과 마찬가지일 게고, 직장을 가지고 있거나 자영업을 남편과 같이 한다면 그 고충은 말로 다하지 못한다. 물론 남편이라고 편한 자리는 아니다. 평생 아내와 자녀들을 위한 생활비를 버는 일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물론 아내도 같이 벌고 있는 가족이 늘고 있지만 우선적인 책임은 남편에게 있기에 중량감으로 인해 어깨가 늘 무겁다. 상사의 질책과 고객의 불평을 자장가처럼 들어야함에도 미래는 불안하고 불투명하다.
그래서 안팎으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가 빠지고 주름살이 깊게 패여도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이처럼 부부는 서로를 섬기며 서로에게 최고의 희생을 바치는 사람들이다. 결혼생활이 평탄하지 않거나 부부사이가 원활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의 배우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검은 머리로 울창했던 이마가 몇 가닥안 남은 흰머리로 덮이고 윤기가 흐르며 탱탱했던 피부는 깊게 패인 주름살로 대신한 배우자를 지긋한 눈으로 한번 바라보라. 불그레한 뺨을 지닌 청춘시절부터 초로의 중년이 되는 동안 일생의 희로애락을 당신과 함께 역경과 고난의 길을 헤쳐 가며 걸어왔다는 사실만이라도 깨닫는다면 고마움과 애잔한 슬픔으로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필자의 지인은 시골에서 배 과수원을 하는 농부이다. 그분의 아내는 이제 60을 갓 넘은 그리 많지 않은 나이지만 몹쓸 병에 걸려 기억을 상실하고 판단력을 잃어버렸다. 배변을 가리지 못할 중증이여서 간병인이 필요하다. 자녀는 대부분 결혼시켜 큰 시름은 덜었지만 시골농사가 그렇듯이 뼈가 빠지게 일해도 먹고 사는 것이 버겁다. 그런데 아내조차 또 다른 짐인 셈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요양시설에 데려다 놓으라고 여러 차례 충고했지만 남편은 요지부동이다. 한 평생 고생한 아내가 제구실을 못하며 천덕꾸러기가 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곁을 떠나보내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밥을 하고 빨래를 하는 등 집안일을 하면서도 시간을 내어 병든 아내를 돌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필자는 가슴이 뭉클했다.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는 냉혹한 세상에 사람냄새가 나는 분이 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돈을 사랑하며 자신만을 사랑하는 차디찬 세상에 부부가 몸을 기대며 함께 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지만 오래 살다보면 배우자의 사랑과 희생을 잊기 일쑤이다. 한순간 감상적인 마음에 배우자를 애틋하게 여길 때도 있지만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늘 기억을 떠올리며 배우자의 사랑과 희생을 생각하며 고마워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렇듯 금술 좋은 부부관계를 변함없이 유지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굳센 의지의 결과이기도 하다. 생각만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 생각을 잊지 않도록 마음을 지키는 일이 쉽지 않을 뿐이다.
3. 같이 있는 시간을 늘려라.
중년여성들 사이에 인기 있는 ‘삼식이’란 유행어가 있다. 정년퇴직을 한 남편이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어 아침, 점심, 저녁을 꼭 챙겨주어는 상황을 시니컬하게 일컫는 말이다. 그동안 남편이 늘 직장에 있기에 친구들과 외식이나 쇼핑을 하면서 자유롭게 지냈는데, 이제는 남편이 아내가 하는 일에 시시콜콜한 것을 참견할 뿐 아니라 날마다 식사시중을 해주어야 하기에 답답하고 짜증 하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평소에 같이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방법을 모르다가 정작 남편이 은퇴 후 같이 있는 시간이 불어나자 그동안 나름대로 누려왔던 자유로운 삶이 방해를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부부가 평소에 같이 즐기던 시간들이 없던 탓이다. 이 부부는 무미건조하거나 좋지 않았기에 서로 마주칠 시간이 없었던 게 부부생활을 유지하는데 그나마 다행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고전 7: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성경은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인 기도시간을 제외하고는 부부가 늘 같이 있으라고 충고하고 있다. 금술이 좋은 부부의 특징은 연애시절처럼 언제나 붙어 다닌다는 것이다. 뜨겁게 사랑해서 결혼한 사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식어지게 마련이고 일상의 문제들을 맞닥뜨리면서 서로의 잘못을 들추어내고 티격태격하다보면 틈새가 벌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화해하고 용서를 빌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쌓인 앙금이 사라지게 된다. 그렇지만 자존심을 세우며 냉전의 시간이 길어지면 회복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자칫하면 더 큰 문제로 확대되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좋은 금술을 유지하는 방법은 늘 같이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필자는 아내와 늘 같이 다닌다. 오전에 서재에서 기도하거나 책 쓰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같이 있다. 오후에 생업도 함께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말에 자연을 찾아 휴식을 즐기는 것이나 친구와 친척들을 만나려 다니는 것도 늘 동행한다. 그래서 필자를 아는 사람들은 약속을 하면 으레 아내와 동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혼자 지방으로 세미나를 갈 때는 어색하기조차하다. 늘 같이 다니는 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부가 일상의 생활을 함께 하게 되면 많은 대화를 하게 된다. 그래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고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