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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은 하나님 공의의 실현 도구 (4) - 문흥수
  글쓴이 : 가나안교회 날짜 : 10-07-22 10:39     조회 : 30    

법은 하나님 공의의 실현 도구 (4)

문흥수

사법연수원에 다니는 동안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게 된 나는 그 후 이른 새벽에 엎드려 기도하게 됐다.

새벽에 엎드려 기도하면 성령이 폭포수처럼 나의 마음속에 임했다. 새벽기도를 한 날은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창공을 날아오르듯 나도 상승기류 가운데 하루 종일 살 수 있었다. 밤에 3시간 공부하는 것보다 새벽기도를 한 뒤 한 시간 공부하는 것이 서너 배 더 공부가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공부한 덕택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 중 하나라는 사법연수원 수료시험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내 생애에 있어 사법연수원에서 보낸 2년은 가장 복된 시절이었다.

전도서 10장 10절은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않으면 더 힘이 드느니라.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고 기록돼 있다. 나는 새벽기도 시간이야말로 나의 철 연장 날을 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새벽에 도우시리라고 하셨다. 예수님도 언제나 새벽 미명에 기도를 드리셨다. 기독교의 역사적인 부활도 새벽에 일어났다. 그야말로 달디 단 잠을 깨우고, 포근한 잠자리를 뒤로 한 채 새벽에 나아와서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의 은혜가 마른 땅 위의 단비처럼 촉촉이 내리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도 없이 세상에 나가면 무기 없이 나가는 것이요, 그날은 세상의 가시에 찔리고 돌에 채이며 상처투성이 패배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새벽기도를 한 날과 새벽기도를 하지 않은 날의 차이를 보면서,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새벽기도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관이 된 후 생활이 안정되자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번번이 새벽기도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매일 새벽기도하는 삶을 항상 간절히 사모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0여년 전에 새벽기도를 하지 않은 날은 아침을 굶기로 작정했다. 아침을 금식하니 한 달 정도는 11시 이후에는 현기증이 오고 힘이 들었다. 그러나 점심과 저녁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 오히려 전보다 더 맛있게 밥을 먹게 되었고, 아침을 자주 굶었지만 체중은 2∼3 ㎏이 늘어났으며, 한 달이 지나자 아침을 굶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렸다. 그 결과 새벽기도는 역시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던 중 나 자신이 확실하게 새벽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새벽기도하지 않는 날은 아침뿐만 아니라 저녁까지 굶을 작정을 하게 하셨다. 그 후 거의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2005년 나는 내가 출석하던 교회의 지교회를 인수해서 개척교회를 시작하게 됐다. 그때 교회를 시작하면서 별로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새벽기도의 훈련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법연수원 다니면서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자 성경공부에도 불이 붙었다. 연수원의 신실한 동료들과 신우회를 만들어 매주 성경공부를 했다. 이것이 사법연수원 신우회의 시초다. 당시 성경을 읽으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그대로 읽고 지나칠 수가 없었다. 성경 암송 노트를 만들어 틈나는 대로 성경을 외웠다.

추석 날 아침 노량진에서 고향까지 가는 새벽기차를 탔다. 고향까지 두 시간이 걸렸다. 나는 열차에 오르자마자 시편 19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야훼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야훼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창밖을 보니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시편 19편 중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는 말씀 같았다. 해가 떠오르는 장엄한 모습과 시편의 노래 속에서 나는 저절로 하나님께 예배를 올리게 됐다.

그 시절 성경을 열면 성경의 글자들이 내 눈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듯했다. 지금 내가 섬기는 교회 성도들과 함께 구약 300구절, 신약 700구절까지 성경 1000구절 암송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나는 그 당시 사법연수원 시절에 500절 정도를 외웠던 것 같다. 주님은 요한복음 8장 31∼32절에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15장에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다. 사도 바울도 골로새서에서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도록 하라"고 선언했다. 말씀 속에서 살게 되면서 내 삶 가운데 요한복음 14장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는 말씀이 점점 이뤄지고 있었다. 성경을 늘 마음에 새기고 살던 그 시절은 참 행복했다.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에도 더욱 열심히 성경말씀을 새겨야겠다는 각오를 해 본다.

주님은 옥에 갇힌 이들을 돌아보는 것이 곧 주님을 돌보는 것이라고 하셨다. 군 법무관으로 근무할 때 직무상 사단 구치소 감찰을 한 적이 있다. 그 경험을 계기로 나는 그동안 꾸준히 군 구치소 선교를 해 왔다. 한번은 구치소에서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을 전도하게 됐다. 빚을 많이 지고 채권자의 빚 독촉에 시달리다 그 채권자를 미워한 나머지 살해한 사람이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 순간 나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이다. 너도 마찬가지로 살인자다."

나는 한때 다윗왕의 이야기를 기록한 성경에 의문을 갖고 있었다. 다윗은 부하 장군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유혹해 잠자리를 같이 하고, 밧세바가 임신하자 우리야를 전쟁에 내보내 죽도록 만든다. 나는 성경에서 이런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든가 위대한 성군(聖君)이라고 전하는 대목을 읽을 때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은 간음자요 살인자인 다윗을 용서하고 사랑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나 자신이 살인자요, 간음자란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나의 엄청난 죗값을 탕감해주셨음을 알 수 있었다. 누구나 다 살인자요, 간음자다. 문제는 그 잘못을 깨달을 때 얼마나 철저하게 회개하느냐이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자 베개가 흥건히 젖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밤새워 회개했던 것이다. 나는 그 살인자에게 다윗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나에게 열심히 성경을 읽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법률 공부를 하면서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법률 공부의 상당수는 인간관계에 법률을 적용하기 위한 기계적 요건들을 기술적으로 익히는 측면이 많다.

다른 전문적인 공부들도 그렇지만 법률 공부 그 자체가 좋은 사람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법률가는 나쁜 이웃이다'라는 속담처럼, 오히려 법률 공부는 약삭빠른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법률은 인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 있어 폭력보다 조금 나은 제도이다. 재판 제도가 원래 복수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폭력적인 자력구제를 방지하기 위해 생겼다는 점에서, 또 많은 법학도들이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독일 법 철학자 게오르그 예리네크 말에 공감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렇듯 법학의 대부분은 기계적인 측면이 많지만 형법학의 범죄 문제만큼은 심각한 철학적, 신학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나 역시 대학시절 형법을 공부할 때부터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이 자유의지에 의한 것인가, 타고난 소질과 환경 때문인가라는 논쟁에 관심이 많았다. 이 문제에 대해 형법학자들은 영원한 미해결 문제라며 장탄식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신앙을 갖게 되면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 역시 성경 속에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짐작했다. 군 법무관 시절, 이 문제를 풀어볼 생각으로 성서를 부지런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창세기에서 의인 열 명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멸망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개개 인간의 운명뿐만 아니라, 어느 한 도시 또는 국가의 운명도 그 소속원들이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반면 이삭의 처 리브가가 아들을 낳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우가 형을 다스릴 것임을 예언하신다. 인간의 운명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예정돼 있다는 것이다.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와 총리가 된 요셉이 자신을 판 형들을 만났을 때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려 하셨나니 두려워마소서"라며 그들을 위로하는 대목이 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인간의 선도 악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좌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성서를 읽어나가면서 결국 법률은 '뿌린대로 거둔다. 행함만큼 받는다'는 하나님 세계의 공의를 실현하는 도구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과 잘못한 사람에게 그에 상응한 책임과 형벌을 부과하는 일이 바로 법률가들이 하는 일이다.

이는 결국 각 사람이 뿌린 것을 그대로 거두게 해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나님 공의의 일부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법의 역할이다. 소유권의 법리는 원래의 주인에게 물건을 되찾아주는 것이요, 채권법이란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게 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형법이라는 것도 그가 한 범죄에 상응하는 죄책을 부과하는 것이다.

결국 훌륭한 법일수록 철저하게 인과응보를 실현함으로써 정의를 수호하는 것이다. 다만, 인간의 법 제도가 그것을 모두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요, 단지 법 제도의 범주에 들어올 수 있는 부분에서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현세에서도 세상의 법에 의해 실현되는 것보다 더 많은 정의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실현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아가 완전한 정의는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이뤄질 것이다.

마취제가 발명되기 전 외과수술을 할 때 의사들은 환자에게 독한 술을 마시게 하고 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신실한 믿음을 가진 어느 의사가 창세기를 읽던 중 하나님이 아담을 잠 재우고 갈비뼈를 꺼내 하와를 만드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마취제를 발명했다고 한다. 이처럼 나 역시 성경을 읽으면서 영감을 얻었고, 법률을 사랑할 수 있게 됐다.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 (스가랴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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