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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1.03] 새로운 의미
  글쓴이 : 가나안교회 날짜 : 10-01-07 10:45     조회 : 146    
목회수상
2009.1.3       새로운 의미                    이용삼 목사

  새해다.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었다. 작년은 기축년 소띠였다면 올해는 경이년 호랑이 띠란다. 그것도 60년 만에 한 번씩 반복하는 흰호랑이 백호띠란다. 그것이 무엇이 그렇게 대단 하겠나 만 당당한 백수의 왕자 호랑이 생각만 해도 신이 나고 힘이 나는 것이니 이 한 해 이런 신나는 일 힘이 나는 일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도 좋다. 호랑이 하면 중국인의 용 인도인의 코끼리 못지않게 한국인의 기상이 아니던가.

  “내 영혼의 영원한 아버지여, 이 날 내 마음에 떠오르는 처음 생각이 당신을 생각하는 것이 되게 하소서, 첫마디의 말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게 하소서, 처음으로 하는 행동이 꿇어 엎드려 당신에게 드리는 기도가 되게 하소서.” 성 프란시스의 기도문이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호랑이 띠 보다 프란시스의 기도가 되어야겠지.

  사람을 헬라어로 안드로포스라 한다. 그 말의 의미는 ‘위를 보고 걷는 동물’ 이라는 뜻이란다. 앞만 보고 걷는 모든 동물과 달리 위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어릴 적 ‘위로 보고 걷자’는 유행가가 있었다. 어찌 유행가가 종교적일 수 있겠느냐만 그래도 가장 현실적인 것이 가정 영적인 것 아니겠는가. '위를 보고 걷자'는 유행가 가사는 영원을 보자든지 하늘을 바라는 신앙을 갖자는 의미는 아니다. 인생사가 하도 서러우니 눈물이 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지 말자. 위를 보면서 그 눈물 떨어뜨리지 말자는 의미다. 속으로 속으로 삭이자는 말이겠지.

  그러나 안드로포스는 모든 다른 동물과의 비교를 의미한다. 어쩜 인간과 동물의 본질적인 차이를 의미한다. 동물은 땅에 속하나 인간은 하늘에 속한 출발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인간의 자부심이다. 이 자부심으로 위로 보고 사는 한해가 되자는 말이다.

  그렇다. 2천 10년 한해가 우리 앞에 던져져 있다. 어찌 의미 없이 그냥 던져져 있겠는가. 어쩜 한해가 우리 앞에 던져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월이라는 한해 앞에 던져져 있는 존재이다. 하염없이 말이다. 그래서인가.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기투된 존재” 즉 던져진 존재라 정의 했다. 내가 선택한 것도 원했던 것도 아닌데 어느 날 보니 세상에 와 있었다. 아니 세상 한 가운데로 하염없이 던져져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내가 이 땅에 던져져 있다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가 이 땅에 던져지던 아니던 태양은 계속 뜰 것이고 겨울은 오고 봄은 오는 것이며 하늘의 뭇 별들은 여전히 반짝일 것이다. 밤의 달은 계속하여 대지를 밝히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 중에 던져진 나의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가장 확실한 진리는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이 세상도 세월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땅에 존재 한다해도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다는 말인가. 그렇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다’ 라는 말씀이 있을 때 나의 던져진 삶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결국 나의 존재 의미는 나 자신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영원자이신 하나님 안에서만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은 내가 의미 없이 그냥 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는 것이다. 창조 안에 의미를 부여 받은 것이다. 가장 위대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 하셨고 그렇다면 나는 무목적 무의미로 창조가 아니라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게 창조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위대한 진리다.

  세계 최고의 호랑이 화가 문세관 화백이 호랑이 해 그것도 흰 호랑이 해에 최대의 크기(1.5m x 3m)의 대백호도를 완성했단다. 10개월간 30만 번 붓질을 했단다. 마치 살아있는 영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백호가 살아 있는 생명 이상의 의미를 부여 할 수 있겠는가. 가장 확실한 것은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호흡이 있다는 것이다.

  잔 폴 사르트르의 ‘구토’라는 소설이 있다. 역사학자 로캉탱의 연구 과제는 18세기의 어떤 후작의 일생을 조사하는 것이다. 그는 열심을 다해 그의 행적과 유물 그리고 후손들을 찾아 헤매다가 어느 날 갑자기 구토를 느끼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 자문하며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과거도 정착하지 못하는 주제에 자신은 누구인가를 파악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즉 자신의 실존을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얼굴도 모르는 남의 과거를 찾다니 하는 하염없는 자아를 발견하고 구토를 느낀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에서부터 구토를 느낀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자기라는 자아의 현미경으로 세상을 보며 하염없는 구토를 하며 존재에 대한 절망적인 구토를 하는 것이다.

  살다보면 ‘더러워서’ 하는 상념을 할 때가 이런 구토일 것이다. ‘그래, 너 잘났어’ 할 때가 이런 구토를 느낄 때일 것이다. ‘너 엿이나 먹어라’ 하고, 돌멩이 던짐 당할 때 구토를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씩 제일 높은 꼭대기 시어즈타워 (지금은 이름이 달라졌지) 올라가서 가랑이 사이로 세상을 보면서 온 세상을 무시해 보는 것이다. ‘그래, 너 잘났다.’

  인생은 무엇인가/ 그 누가 알랴/ 고생해서 애쓰다 죽으면 그만인데/ 누가 우리를 향해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나/ 결국은 허무와 죽음의 인생인 것을/ 아이들이 깡통을 두드리며 악을 쓰는 모습을 본다.

  ‘그것은 결국 내가 우연히 던져진 무목적 존재 일 때다. 하지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 안에 무목적 존재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가 있는 자신임을 그 곳에서 찾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해 첫 시간이 과학이 만든 캘렌더에 의한 하루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시간을 하루를 받았다는 것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일 것이다.

  365일 아무도 밟아 보질 못한 순백의 한해에 발자국을 남기는 책임은 결국 자신이 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도 역시 ‘이 날 내 마음에 떠오르는 처음 생각이 당신이 되게 하소서’ 기도 할 수 있겠지.

  아아/ 눈 덮인 갈대밭 너머/ 바다 구름 안개와/ 불을 지나오시는/ 새해 첫새벽의/ 우리 하나님/ 두 손에도 황송한/ 한 장의 백지를/ 고루 나눠 주시는 설날의 하나님/ 김남조씨의 신년의 기도를 읽는다. 새해 새아침 참 맑다. 그래서 세월은 거룩하다. 그리하여 새로운 의미를 확인해 본다.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 (스가랴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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