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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1.24] 나도 넘어질까 조심하라
  글쓴이 : 가나안교회 날짜 : 10-02-01 13:45     조회 : 141    
목회수상  
2010.1.24       나도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용삼 목사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이니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시 13:1)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시 10:12)

  역사 이래 이 땅에는 가난하고 억울한 일들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되어왔다. 갖가지 정쟁과 전쟁의 재앙 지진과 해일들의 자연 재앙까지 쉼 없이 일어났었다. 가난한 자에게 더욱 일어나는 것 같다 하여 시편의 기자들 여호와께 부르짖었을 것이다. ‘나를 잊으시나이까. 잊지 마옵소서’ 하고 절규하는 것이다. 과연 이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시나이까? 정말 억울한 것이다. 한이 맺히게 억울할 것이다.

  카리브 연안의 섬나라 하이티 공화국에 강진으로 사망자 수가 20만 명이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생각한 것이다. 인구가 9백만 명이고 피해는 전체 인구의 1/3에게 있었고 죽은 자가 전체 인구의 1/50이란다. 엄청나다. 고난의 행군 때 북한이 기아로 죽은 자가 백만 가까웠다니 북한 인구 2천만의 1/20 죽었다는 말 아닌가.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 할 수 있는가. 그래서 어린 마음으로 세상을 확 불을 질렀으면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한 때 하이티 나라를 소개 받으면서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진흙으로 쿠키를 만들어 먹이는 이 땅에서 가장 가난한 빈국임을 알게 되었다. 하이티란 '산이 많은 땅'이라는 의미에서 왔음과 국토의 3/4이 산지며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으로 최초로 독립된 흑인 공화국임도 알게 되었다.

  하이티에 대한 정보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같은 히스파니올라 섬의 서쪽 1/3은 하이티 공화국이나 같은 섬 동쪽 2/3이 바로 도미니크 공화국 아닌가. 도미니크라면 가나안의 선교지인 도미니칸 가나안 교회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선교 사역으로 네 번이나 가 본 곳이다. 서쪽 하이티와 비슷한 인구이지만 다른 것은 서쪽 하이티가 불어를 사용 한다면 동쪽 도미니크는 스페니쉬를 사용하고 같은 섬인데도 서쪽 하이티는 함부로 벌목함으로 황패한 산야고 동쪽 도미니크는 푸른색 산야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도미니크가 하아티와 비교해서 훨씬 잘 사는 나라인 것이다. 같은 섬인데 이렇게 다름이 이상하다.

  어찌 같은 산야인데 휴전선 이북과 이남의 산야가 달라 북은 황토색 산으로 남은 울창한 수풀로 이루어져 비교가 되듯 서쪽 하이티와 동쪽 도미니카가 다를 수 있는가.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소서.

  바로 이 최빈국 하이티에 하필이면 그 위에 또 지진으로 인해 수도 포르토프랭스가 초토화 되었단다. 현지 특파원은 “거리에 한 개의 건물도 온전히 남아있지 않다”며 상황은 전쟁터 보다 더 참혹하다고 했다. 여러 국가에서 구조 팀을 급파하고 미국 정부도 해군 전함과 함께 만여 명의 해병 병력을 파견했다 한다. 온 세계의 나라들이 앞 다투며 구호에 동참함이 참 아름답다. 세계은행에서는 1억 달러의 긴급 구조 자금을 제공한단다. 도움의 손길은 확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현장의 사람들의 갖는 아픔과 절망감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창 3:17-18) 그렇다. 자연 재해는 인간의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이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러면 저 하이티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죄가 많아서 그런 재해를 당한다는 것인가?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일찍이 예수님 시대에 아마도 로마 통치하에 있었던 상황에서 과격한 갈릴리 사람들이 로마법을 어기면서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 할 때 로마 병사들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이 나온다. 이 때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질문 하신다. (눅 13:2)

  그러고는 답은 없으시다. 대신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는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하시는 말씀으로 보아 재난과 재해가 무조건 죄의 결과라는 단정하기보다 이웃이 그러한 재난의 불행을 겪을 때 우리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제시 하시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모두가 똑같은 죄인임을 잊지 말고 언제나 나에게도 그러한 재난과 재해가 있을 수 있음에 대한 경고의 말씀일 것이다. 또한 이웃이 그러한 불행을 겪을 때 형제를 향한 정죄보다 도리어 그 형제를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갖는 겸허한 자아가 되자는 의미이실 것이다. 그래서 남이 넘어지면 자기도 넘어질까 조심하라 하셨다.

  예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명복을 빌고 명조를 빈다고 했다. 명복을 빈다는 뜻은 고인이 저승에서 복을 받으라는 축원의 의미다. 그래야 남아 있는 후손들이 조상의 음공으로 복을 받을 수 있는 명조가 있기에다. 그래서 조상이 저승에서 복을 빌기 위해서는 명당자리에 묘자리를 쓴다는 것이다. 사실은 죽은 조상의 저승에서 받은 것 보다 그로 인해 남아 있는 후손들이 복 좀 받자는 의미가 더욱 강하게 들어 가 있는 것이다. 죽은 자의 슬픔을 통해 우리에게는 기쁨과 복이 되는 아주 이기적인 심리일 것이다.

  행여나 이웃의 재난과 아픔을 이용해서 나의 명조를 바란다면 진정성이 아닐 것이다. 하이티의 재난으로 인해 세계열강들이 정쟁의 현장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때때로 작은 정성을 보이면서 신문에는 대문 짝한 한 소개를 하는 것도 그런 것이다 하여서 예수님께서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하셨던가.

  그래서 남이 넘어지면 나도 넘어질까 조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가난한 자를 돌보시지 않으시나이까 고아와 과부의 아픔을 살피지 아니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가난한 자에게 이런 재앙까지 주셨나이까. 하지만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이사야 55:9) 말씀 앞에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스스로 부끄러워 입술을 가리우나이다." 욥의 고백이 우리들의 고백이다.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 (스가랴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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