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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가나안교회 |
날짜 : 10-02-11 11:06
조회 :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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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수상
2010.2.7 선한 방법으로 이용삼 목사
어릴 적 괜히 부자들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면서 막연히 나도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런 것이야 안 해 본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막연히 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도 그리고 그에 대한 준비도 했었다. 준비라야 책을 읽고 밑줄을 그으며 벽에 붙여두고 읽으면서 각오한 정도이지만 말이다.
그때 ‘강철왕 카네기’ 전기를 다룬 책이 나에게는 금방이라도 부자가 될 것 같은 유혹이 되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그가 얻은 부를 세계 도처에 기부한 최고의 자선사업가란 것에 더욱 매력이 되어졌던 것이다. 그 책 내용에 ‘인간 처세술 덕목 10가지’ 혹은 ‘카네기 열 가지 교훈(십훈)’ 혹은 ‘돈 벌기 여섯 가지 원칙’ ‘행복 30훈’ 등 지금 생각해도 독특한 인생관 처세관이 가득했던 것임을 기억한다.
그 중에 ‘성공의 십훈’ ‘부자 6원칙’ 등은 책상 앞에 붙여 놓고 매일 크게 소리치며 읽은 기억이 난다. (1) 마음에 네가 원하는 부의 액수를 정하라 (2) 이 액수를 얻기 위해 넌 무엇을 지불 할 것인가 (3) 원하는 액수를 언제까지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날짜를 정해라 (4) 소망을 얻기 위해 구체적 계획을 세워라 (5) 위의 네 가지를 종이에 적어 책상 앞에 붙여두라 (6) 이 내용을 아침저녁 큰 소리로 읽으며 이미 얻은 것처럼 믿으라. 뭐 이런 것들이었다.
하긴 그 때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었으니 부자가 되는 꿈을 누구나 꾸었을 것이며 막연히 그 때 부자들은 너무 욕심쟁이들이다 는 생각에 그 적개심의 반대급부로 이런 공상들을 했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예수를 믿고 목사의 길로 들어서면서 이러한 꿈은 한갓 안개와 같이 사라진 것이다. 목사가 안수를 받을 때 눈물이 한없이 쏟아진 이유 가운데 부자의 꿈을 접어야 한다는 아쉬움에 겨워서도 울었으리라 하는 생각도 해본다. 생각하면 목사가 아니었다면 부자도 못되고 좌익으로 빠졌을지 모른다. 공산사회에서야 부자가 있을 수 없다. 아니 부자는 타도의 대상이다. 왜냐면 착취자요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는 자로 낙인이 되어 있기에다. 물론 부자 중에는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나 부자도 될 수 없다. 괜히 없는 자가 있는지에 대한 질투요 시기일 수도 잇다. 가난에 대한 철부심한 한이 그와 같은 적대감을 가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회 정의를 위해서는 착취 부자를 제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리라.
도스도엡스키의 ‘죄와 벌’이 그와 같은 주제다. 주인공 법대생은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살해한다. 그 순간 노파의 배다른 여동생이 나타나자 그녀도 죽인다. 선량한 학생이다. 다만 그는 가난한 등록금도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학생이나 선량한 학생이었다. 악덕 포주인 여인은 사회의 장애물이다. 이 장애물을 없이하고 만일 그 노파가 가진 돈을 뻿어 인류를 위한 선한 일에 사용 한다면 노파를 죽이고 돈을 빼앗는 일도 선한 일이다 하고 생각하여 죽인다. 즉 ‘선한 목적은 악한 수단을 정당화’ 하는 논리였다. 하지만 아니다.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다.’ 목적은 이루었지만 양심에서 부르짖는 소리는 선한 목적과는 다른 것이었다. 고뇌하는 사람이 된다.
한국 대학에 온갖 학과가 들어선 것은 익히 알지만 ‘부자학’이라는 독립된 학과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것도 기독교 학교인 여자 대학인 서울 여자 대학에서 5년 전부터 개설되었는데 미어터지도록 학생이 몰린단다. 메릴 린치의 보고에 의하면 부자란 주택과 소비채 등을 제외하고 백만 불 이상 금융자산 가진 자로 분류 한단다. 이 분류에 일본은 140만 미국은 250만 명 정도가 된단다.
성경에서는 끊임없이 돈에 대한 부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하신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 ‘욕심이 잉퇴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 마음이 가난한 자 복이 있다 그러나 실은 가진 것에 대한 감사요 지족하는 마음이지 부자가 돈이 악은 아니다. 그래서 구약에는 이삭 같은 이는 ‘그해 백배를 얻었고 마침내 거부가 되어’ (창 26:12) 했고 아브라함도 야곱도 요셉도 다윗도 솔로몬도 영적 거장들이 하나같이 부자임을 안다.
한국 큰 부자 기업을 보자. 삼성 현대 LG의 임직원 수가 가각 10만 명이 넘는단다. 제일 많은 삼성이 13만 명이란다. 게다가 삼성을 위해 조달하는 다른 종소기업의 임직원들도 10만이 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기업 아니 한 사람 부자로 인해 거의 25만 명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아니다 25만의 부양가족들이 두 사람만 되어도 75만 명 혹 네 명이라면 백만 명 한 기업이 한 부자가 백만 명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결코 인간의 뜻이 아니리라. 정말 세상을 먹이시는 분은 하나님 아니신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들 부자들을 사용하셔서 먹이신다는 말이고 부자는 기업을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일꾼이요 기업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작은 부자는 부지런하면 되고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리시는 거’이라 했던가.
올 해 삼성의 매출액이 136조로 독일 지멘스 미국 HP를 넘어 1위란다. 영업 이익은 11조면 한국사람 일인당 2만원 꼴이다. 이쯤이면 부자는 타도의 대상 적대감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해야 할 대상이 아니겠는가. 선망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부자학’이 학문 중 하나나 된다는 것 전혀 이질감이 없는 것이다.
한국만 일까. 세계 최대 기업인 샘 월튼의 월마트는 전 세계적으로 고용 인원이 150만 명이란다. 가난한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이 거대 기업으로 인하여 4백여만 명 (부양가족 2-3명 계산으로)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계산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하신 말씀은 떡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육신은 떡으로 살아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것이 가장 영적이라면 떡이야 말로 가정 현실적이요 이를 잘만 사용하면 영적인 것이다. 앉아서 부자들의 욕을 할 이유가 없다. 저들 나름대로 땀 흘림과 고생의 결과다.
교인 중 작은 비즈니스 점포를 계속 늘리면서 사람을 채용한다. 미국에서 참 용하다. 그러나 그보다 그 마음은 더욱 귀하다. “목사님, 점포 하나 늘리면 나에게 그만한 이익이 남는 것은 아닙니다. 그 대신 채용한 고용인 몇 사람과 그들의 가족들을 먹여 살린다는 이익이 있으니 계속 늘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지 그래서 계속 늘릴 때 마다 가서 개업 예배를 드려도 피곤치 않고 즐거운 것이다.
샘 월튼의 10가지 사업 수칙을 적어 본다. 1) 자신의 사업에 전념하라 2) 이익을 모든 동료와 함께 하고 그들을 동반자로 대우하라 3) 동반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라 4)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동반자들에게 전달하라 5) 동료들이 당신의 사업을 위해 하는 모든 일에 감사하라 6) 성공을 함께 자축하라 7) 모든 사원의 말에 귀 기우리라 8) 고객이 기대하는 것을 넘어서라 9) 비용을 경쟁자보다 낮게 통제하라 10)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라. 옛날 내가 외우던 카네기 십훈 보다는 많이 다르다. 세대가 그만큼 달라졌다는 것일까.
믿는 자 가운데 더 많은 부자가 있어 먹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 되는 비즈니스 그리고 부자가 되어라. 단지 선한 목적을 위해 선한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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