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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1]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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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가나안교회 |
날짜 : 10-02-28 10:09
조회 :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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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수상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이용삼 목사
2010.2.21
자동차 물결 속에 세 개의 다이아몬드가 연결되어 있는 엠블럼을 보면서도 어느 자동차 회사인가는 훨씬 나중에 알았다. 바로 일본의 미쯔비시 회사였다. 시그마 이크립 등에 달려 있었다. 미쯔비시 하면 2차 대전 당시 최고의 일본 군수공장인 것에 대한 저항감이 있어서인지 마음이 가질 않는 회사다. 더구나 이 회사가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 거의 10만 명을 부려먹은 회사가 아닌가. 어떻게 호기심이 있겠는가. 그보다 미쯔비시 회사에 대한 선입견은 히로시마에 있었던 징용자 이야기에서 더욱 그러하였다.
미쯔비시 회사가 히로시마에 정비공장과 무기 제작소 비행장 활주로 공사에 불쌍한 조선인 징용자를 투입했던 것이다. 이 때 원폭 투하가 있었고 일본인은 물론 이지만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들 수없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 이름은 기억 못해도 별명으로 기억하는 선생님이시다. 바로 ‘원자탄’ 선생님 이셨다. 당시 히로시마에 계셨고 원폭의 빛이 살짝 지나 가셨다는 왼쪽 뺨이 불에 데인 화상 자국이 계셨다.
겨우 살아난 징용자 246명이 1945년 9월 전기선 즉 동력과 돛을 함께 사용하는 작은 기선을 타고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오다 바다에서 태풍을 만나 대마도 가까이에서 전복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전원 실종이 된 일이 있었다. 즉 전원 바다에 수장된 것이다.
생각하면 얼마나 억울할까. 대부분 꽃다운 나이 아니면 막 결혼해서 고향에는 아내와 자식들이 기다릴 것이고 전쟁만 끝나면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갖고서 그 모진 아픔도 견디어 내다가 마침내 고향 가는 배를 탓을 때의 감격과 기쁨이 어떠했을까. 바로 앞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상상이나 하였을까.
그보다 이제 해방이 되었으니 아들이 남편이 혹은 아버지가 이제는 돌아오겠지.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고향의 사람들 눈이 빠지게 고개가 삐뚤어지도록 애타게 기다렸을 터 하지만 수장되어 물고기의 밥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얼마나 한이 되었겠는가. 그렇다. 그것이 우리 한국이다. 그렇게 서러운 민족이다. 온 강산에 역사의 아픔들이 켜켜이 쌓여진 것이다. 그래서 한국서 피는 꽃들이 그렇게 진한 색깔이란 말인가. 2차대전 당시 조선인 강제 연행 피해자가 40만 2032명이라는 명단이 있었단다. 아마도 그 명단에도 없는 자들도 훨씬 많아을 것이다.
‘타이타닉호의 최후’ 라는 감동적인 영화가 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1912년 4월 14일 절대 침몰되지 않는 배로 알려진 이 타이타닉호가 대서양 횡단 중 빙산과 충돌 여객 2200여 명 중 1513명 수장된 사건이다. 아름다운 음악과 젊은 남녀의 사랑까지 만들어 멋진 영화가 되었다. 그런데 이 배가 침몰 14년 전에 소설가 모건 로비트슨이 “푸틸리티” 라는 소설을 썼는데 이 소설 속에 절대로 침몰되지 않는 배가 나오는데 그 이름은 타이탄 호였다. 결국 소설 속에도 빙산과 충돌 비슷한 인명 피해를 내는 이야기 소설이 마치 예언처럼 쓰여진 것이다.
사실은 이 소설 혹 영화 그리고 실제보다 더 큰 엄청난 실제가 있다. 한국 영화 스케일도 헐리웃 따라가려는데 왜 이런 영화는 못 만들까. 타이타닉 호 보다 더 멋진 사건인데 하는 것이 있다. 곧 우키시마호의 폭침이다. 이런 것은 더 없는 영화의 소재일 텐데..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은 처음엔 주로 활주로 공사 혹은 석탄 캐는데 투입되었는데 전쟁의 막바지 때에는 군사시설에 투입 된다. 그 때의 정황이야 필설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흡사 짐승 같이 부렸으며 낙반 사고가 나면 그 자리서 묻히고 풀뿌리에 연명하고 살았단다.
일본이 항복하자 조선인들이 집단적으로 폭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누명 아래 모두를 한국으로 보낸다고 우키시마호에 타게 했다. 이 배에 타지 않은 이에게는 식량 배급이 중단되며 이것이 마지막 한국행 배라 했으니 멀리 훗가이도에서 귀국을 희망하는 조선인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줄잡아 7천 5백여 명이 배에 탔다.
시모키다 반도의 오미나토 항을 출발한 우키시마호의 목적지는 부산이다. 7천여 조선인들 소망이 어떠하였을까. 이제는 고생도 끝났다는 감개무량 그대로 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틀간 항해하던 배가 돌연히 뱃머리를 돌려 교토부의 마이즈루 만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곳에서 배는 굉음과 함께 폭파된 것이다. 5천여 명 조선인들의 배와 함께 수장된 것이다. 계획적인 조선인 몰살 사건임임에 틀림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국인은 아픈 사람들 상처 난 사람들이다.
다행히 북한에서나마 이 사건을 영화화하며 ‘살아있는 영혼들’ 이란 제목으로 지난 1월 홍콩 영화제에 출품 했다니 관람하고 싶은 영화다. 이데올로기를 최대한 탈색한 상업적 영화이다 보니 아마도 한국 혹은 서방 세계에도 상영할 것이다.
지난 17일을 Ash 수요일 즉 재의 수요일이라 한다. 사순절의 시작일 이다. 우리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기 위하여 부활절까지 일요일을 뺀 40일간 기간을 말한다. 주께서 광야에서 사십 일간 금식하며 기도하심을 그리고 부활까지의 40일간 수난을 기억하며 거룩한 삶을 위한 기간이요 경건의 훈련기간 이기도 하다. 이 기간 거룩한 삶을 위해서는 전제될 것이 회개다. 뉘우침이다. 이 뉘우침 없이는 거룩도 회개도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미쯔비시 만이겠는가. 정말 전쟁 중 악한 일을 한 일본은 뉘우치고 회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어떤 명분도 어떤 목적도 불쌍한 피지배 민족 조선이 가졌던 아픔을 대신 할 수 없다. 오직 회개하며 뉘우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없이 새사람 되는 것은 또 다시 그런 전철을 밟을 수 있을 것이다.
교회와 교우들의 맘을 이토록 아프게 했던 일들 주의 몸된 교회의 상처가 바로 우리 주님이 받은 상처이니 이렇게 한 모든 악한 일들을 이 기간 속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는 누구도 하나님 은혜에 바로 참여치 못할 것이다.
대마도 앞 바다에 수장된 미쯔비시 징용자 246명의 파선에도 누군가가 그 아픔에 책임자가 그리고 마이주루에서 폭파된 그리하여 5천여 명을 수장 시킨 우키시미호의 그 아픔의 책임자도 그리고 가나안선의 수백 명을 잃어버린 그 책임들이 이 사순절을 통해 회개하며 뉘우치는 일 없이 무엇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겠는가.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 많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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