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수상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용삼 목사
2010.6.27
우리 세대를 6.25 세대라 한다. 육이오 즉 한국 전쟁을 몸으로 경험한 세대란 말이다. 그렇다고 전쟁터에 나가서 싸움을 직접 했다는 것은 아니다 겨우 초등학교 4학년 때였으니까. 그래도 피난민 물결을 그리고 방천뚝 좌우에 다닥다닥 붙은 일명 하꼬방을 짓고사는 피난민들과 같이 살았으며 때로 고사포에 놀라 도망하던 때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적산 집으로 우리 집은 꽤 넓은 집이었다. 방이 다섯인데 3개는 피난민들에 세를 주었으니 집안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었다. 밤이 되면 대포 소리들 그리고 전투기 소리들로 혼을 빼놓는다. 그 때마다 집 마당 가운데 있는 방공호에 숨는다.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 둔 것인데 우리 아홉 식구만 해도 비좁은데 세 들어 사는 가족들도 함께 들어가니 운신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때엔 모든 것이 황패 했었고 모든 것이 모자라는 시대였다. 인간으로서의 품격이란 것은 던져 버리고 오직 생명을 위해 아니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칠 때 아니던가.
소련의 반체제 소설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나오는 슈호프는 정확히 3653일 즉 십년을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면서도 원칙이 있었다. 즉 인간의 품격을 지키겠다는 원칙이다. 꾀병 부리지 않겠다, 편하기 위해 다른 수형자를 밀고치 않겠다, 아무리 허기져도 남이 먹고 난 죽그릇을 핥지 않겠다, 공짜로 무엇인가 얻으려 않겠다, 작업 때 성의를 다 하겠다, 즐거운 맘으로 일한다, 품격 있는 사람을 인정한다 등등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품격을 지킨다는 것 어려우나 그것이 인격이다. 6.25 전쟁은 이런 모든 인간으로써 품격들을 상실한 사회였다.
동네 사람들과 상의해서 우리 동네도 피난 갈 것을 결정하고 아버지께서는 집안 물건들을 예의 그 방공호에 넣고서 위는 흙으로 덮으시는 작업을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아버지 연세가 40대 초반이실까. 일곱 아이들과 아버지의 형제 중 일찍 돌아가시고 맡은 사촌 둘까지 열한 명 식구를 거느리고 피난 간다는 절박한 상황이었으리라. 그런데도 초등학교 때 우린 각자가 지고 갈 백팩의 내용들을 보고 소풍가는 학생마냥 까불고 즐거워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기가 차실 부모님 아니겠는가.
하긴 우리에게는 전쟁이란 온갖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때 아닌가 모른다. 매일 학교에서 책상에 앉아있는 것보다 얼마나 흥미로운데 말이다. 그래서 피난 가는 것도 즐거운 일 아니겠는가. 신나는 일인 것이다.
꼬마들에게 신나는 것은 한 번씩 비행기 지나가면서 뿌리는 전단지 즉 ‘삐라’라고 불리는 종이다. 우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비 아니면 눈인데 종이가 내려오는 것에 신기했고 그 종이에 쓰인 광고 내용보다 종이 자체가 얼마나 귀한 것인데 말이다. 당시에 공책 즉 노트는 누런 종이에 연필에 침을 묻혀 쓰면 찢어지는 종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 사용하는 흰색 paper이니 얼마나 귀한 광고지인가. 한 번도 양면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면만 사용했으니 그 이면은 그대로 보존 되어 있는 것이다. 사용 가치가 너무 좋기에 아이들은 이 삐라를 주울려고 야단들이었다. 실제로 이 삐라 종이로 딱지를 만들면 그때 정말 짱이었다.
아버지께서 다니시는 회사에 갔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종이를 나 혼자 다 주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말하자면 횡재 아닌가. 그런데 말이다. 갑자기 꽝하고 소리 나면서 기왓장이 부서지면서 떨어지는데 예의 그 광고지가 흩어지지 않고 뭉텅이로 떨어진 것이다. 복이 넝쿨째 굴러 떨어진 것이다. 아마도 5백장은 능히 되는 양이었다. 그 해 아니다 그 다음해까지 나에게 귀한 공책 역할이 되었고 그림 그리는 도화지가 되었고 글 쓸 수 있는 원고지 역할을 해주었다.
그 때 라디오를 갖고 있는 집은 한반에 한 사람정도 있을까. 더구나 시골에는 전혀 없던 시대에 정부에서 혹은 미군들이 백성들에게 알릴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광범위한 방법이 바로 이 전단지인 삐라였다. ‘삐라’가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지만 이 광고지로 인해 인천상륙 작전도 서울 수복도 평양 점령도 알게 되었다. 꼭히 이런 소식만이 아니라 전장에 뿌려지는 심리 작전이기도 했다. 삐라에 적힌 내용이 적의 사기를 꺾고 투항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마치 초나라 한나라 싸움에서 사면초가의 심리전을 하듯이 말이다. ‘고향의 식구들을 생각하고 항복하라’ ‘항복하면 안전하다’ ‘유엔군은 강하다 당신들은 결국 패배할 것이다’ ‘공산당 결코 믿지 말라’ 등이 적힌 전단지로 인해 실제로 많은 인민군들 더구나 중공군이 투항해 왔다고 한다. 물론 공산군들도 이런 삐라를 뿌렸다. 공중에서 아니라 소년들을 시켜 배낭에 넣어 몰래 뿌리는 방법이었단다. “Darling I will dream that you are coming back to me this Christmas” (이번 성탄에는 돌아오실 것 믿어요)
통계를 보았다. 유엔군의 전단 살포는 초기에는 매달 5천만장이 나중에는 8천만 장으로 늘어났으며 모두 약 4백종으로 6.25때 한반도에 뿌려진 삐라 즉 전단지가 약 28억장이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 말이 28억장이지 한 장씩 덮는다면 강산을 몇 차례 덮을까.
코주부 삼국지로 유명한 김용환 만화가의 그림으로 만든 삐라를 이승만 대통령이 보고 종전 후 일본 유학까지 보냈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삐라 4백여 가지 중 그림으로 만든 것이 반 가까이였다.
전단지는 확실히 광고 효과의 일차적 방법이다. 그런데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짧으나 강력한 메시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의 그림이라 하여도 그 속에 원하는 표현이 다 담아져야 할 것이다. 일컬어 광고 효과이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장 9절의 말씀은 광고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복음의 삐라를 뿌리고 선전해 달라신다. 이때의 선전은 선언과 같은 말이다. 복음을 선언하는 가장 확실한 삐라는 무엇일까? 6.25같은 처절한 황패함 가운데서도 재건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다. 지금 교회가 처한 상황이 한국 전쟁터의 황패함 같아도 다시 세울 것이라는 사랑의 약속이다. 모든 이가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던 인생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주셨다는” 가장 귀한 덕을 선전해야 하는 사명은 모든 믿는 자의 사명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6.25때의 하나님의 삐라요 지금 황폐한 제단에도 뿌려져야 할 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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