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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가나안교회 |
날짜 : 10-07-09 10:56
조회 :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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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수상 다시 한번 이용삼 목사
2010.7.4
경상도 말에 ‘다부’ 혹은 ‘다부로’ 라는 사투리가 있다. 사전을 찾아봐도 이 단어는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어릴 때 많이 사용한 단어다. ‘다부’ 라는 말은 ‘다시’ 라는 말로 사용하였다. ‘다부로’ 하면 ‘꺼꾸로’ 하는 말로 사용해 왔다. 가령 “갖다 주랬는데 다부로 갖고 왔나” 하면 가져다 줄 것을 도리어 갖고 왔다는 의미다.
경북 칠곡군 가사면에 다부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백마고지 전투와 함께 6.25 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다. 북한국은 이곳을 점령해야 대국을 점령 할 수 있고 국군의 경우 여기서 물러나면 대구를 내어 주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말 그대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이때의 인민군 박격포가 우리 동리까지 와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을 기억한다.
국군 1사단 및 미군 27연대가 밀려오는 북한군을 맞아 다부동의 유학산을 하루에도 몇 번씩 뺏었다가 빼앗기는 혈투가 50여 일간 공방 하였으며 이로 인해 아군 1만 명의 북한국 2만 여명의 사상자를 내었다니 하루에 5,6백 명 죽어 간 치열한 전투였다. 당시 사단장 백선엽 장군의 유명한 말 “만일 나 사단장이 물러서면 너희들은 나를 쏴라. 만일 너희들이 명령 없이 물러서면 내가 이 총으로 너희를 쏘겠다” 하면서 사단장이 직접 맨 앞서서 전투에 나갔다는 유명한 일화다. 다부동은 주인이 수십 번 바뀐 후 드디어 북한군을 저지 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대구 사람들 피난을 준비하고 혹은 출발하다 되돌아오게 되었으며 이 사수로 인해 반격의 기회와 인천상륙작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했단다.
그 때 이야기다. 유학산 자락을 뺏어다가 다부로 뺏겼고 그리고 또 다부로 찾았기에 그 장소를 다부동이라 부르고 그 전투를 ‘다부동 전투’라 명명한 걸로 알고 있었다. 훨씬 나중에야 그곳이 처음부터 다부동이었고 이때의 다부란 부자가 많다는 동리라는 의미의 다부동 이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축복의 땅이란 의미의 다부동이 자칫 거꾸로(다부로) 가장 기가 막힌 전쟁으로 인해 가난함으로 변해 진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더 큰 부자가 되어야 하는데 다부로 전쟁의 현장이 된 것이다.
지난주가 6.25 사변 60주년이 되었다. 3년여 전쟁으로 인해 겨우 해방되어 일어나는 신생 한국이 다부로 그 전보다 더 황폐하게 된 것이다. 한국군 13만 7천 유엔군 5만이 전사했고 한국군 유엔군 4만여 명이 포로로 잡혔으나 실종 되었단다. 남한 국민 37만이 목숨을 잃었고 38만은 납치 혹은 행방을 알 수 없다. 북에서도 민간인 120만 명이 사망 또는 실종 되었단다. 당시 한국의 국민 총 생산인 GNP는 67달라 지금의 2만여 달라와는 비교 할 수 없는 최빈국이었다. 북한은 지금 1천불 정도란다. 예산ㄹ로 다부로 돌아가는 것 같다.
당시에는 공산 사상이 똑똑한 사람들이 갖는 자부심이라 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 반일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공산화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산 사회가 지금 북한인의 실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부로 옛날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인류가 오늘날의 문화를 이루기까지는 수천 년의 시간에 수많은 희생을 통해 이루어 놓았지만 이 문화를 파괴하는데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수소탄 몇 개만 터진다면 인류는 완전히 최고의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즉 다부로 돌아가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일 것이다.
꽃밭을 가꾸는 일에는 오랜 시간과 땀을 흘려야 겨우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이 꽃밭을 파괴하려면 일부러 삽을 갖고 파헤친다든지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두면 된다. 그러면 꽃밭의 꽃은 더 이상 피어나질 않고 대신 잡초로 우거질 것이다. 그냥 두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부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다. 인간은 악하다. 그러면서도 교육이나 체면 등으로 가리어질 뿐이다. 전쟁은 이 모든 가림을 벗어내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금 악한 길로 다부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 간호사의 증언이다. 20세에 서울 대학 병원에서 근무 중 6.25가 발발했다. 즉 전쟁이 시작 되었다. 다음날부터 국군 부상병들로 대학 병원은 아수라장이다. 일반 환자들은 웬만하면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고 부상병들만 치료에 매달리고 있을 때란다. 28일 인민군들이 병원을 점령함과 동시에 각 병실에 있던 국군 부상자들을 찾아내어 바로 총을 쏴버리는 것이었다. 수백 명의 부상 군인들이 병원에서 죽었단다. 어린 간호사가 얼마나 놀랐을까. 그는 겨우 겨우 살아났지만 그 때 이후 인간이 얼마나 악한가 하는 것을 한 번도 잊어버리지를 못하겠더란다. 그렇다. 전쟁은 모든 것을 다부로 돌아가게 하여 인간 본래의 악함을 그대로 전시하는 것이다. 무슨 인류애가 있겠던가. 어디에 자비심을 바라겠던가. 아니면 내가 대신 죽는데 말이다.
평소 믿음 생활 하는 사람들 보면 그 자비 그 사랑 얼마인가. 그런데 이런 믿음의 사람들도 전쟁 같은 문제 속에서 그 사람의 됨됨이가 그대로 들어나는 것이다. 악한 자아 말이다. 믿음이라는 것이 잠시 덧칠이 되었을 뿐 그 인격의 변화는 없었던 것이다. 교육과 체면이 잠시 무화과 잎으로 부끄러운 치부를 가렸을 뿐이다. 문제가 생기니 무화과 치마도 던져버린 부끄러운 자아가 나타난 것은 악한 인간으로 다부로 돌아 간 것이다. 단지 잠시 믿는 척 했을 뿐이다. 실은 그냥 덧칠한 것이지 바뀐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살면서 인간이 이렇게 악한 것인가. 새삼 놀라지만 전혀 놀라울 필요가 없다. 너나 나나 한 가지로 악한 존재이기에다. 다부로 돌아가는 실존은 누구보다 견줄 수 없는 무자비한 악인 것이다.
인간은 6백만 사람을 가서 처형실로 보낼 수 있는 무자비함의 존재이면서 가스실로 죽으러 가면서도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찬송가 부르며 당당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당당히 가스실로 향하는 그 사람도 언제든지 6백만 사람을 가스실로 보낼 수 있는 악한자일 수 있다는데 절망하는 것이다.
그렇다. 전쟁으로 인해 다부로 악의 존재로의 회귀함이 아니라 다부로 하나님의 본래의 창조의 의로 돌아갈 수 있는 다부로 돌아가는 것은 내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아니겠는가. 이 은혜를 받고 싶다.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 기념일이다. 오늘날 미국을 보면서 다부로 인간성으로 달아가는 듯 한 육신의 세계를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시 7월 4일의 본래의 의미로 다부로 돌아가는 역사에 내가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의 날 아니겠는가. 본격적인 여름 7월의 길목인지 올해 처음 매미 소리를 듣는다. 다시 한번 은혜의 길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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