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
|
|
|
|
|
| 글쓴이 : 가나안교회 |
날짜 : 10-07-16 14:36
조회 : 68
|
|
|
|
목회수상 가장 긴 다리는 이용삼 목사
2010.7.11
어릴 적 우리가 살던 동네에는 신천이라는 청천강 지류가 지나간다. 여기에 작은 나무다리가 놓여 있어서 서쪽의 우리 집과 동쪽의 사촌 형님네 댁을 찾을 수 있는 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여름 장마철이 되면 이 나무다리는 잠겨 버려 갈 수가 없다 하여 한참을 돌아가면 큰 교량이 있고 건너서 꼬불꼬불 한참 가야 겨우 갈 수 있었다. 지금에서 이곳에도 거대한 콘크리트 교량으로 연결되어 사람도 차도 언제나 건널 수 있다.
다리 혹은 교량은 먼 곳을 보다 가까이 갈 수 있게 하는 인간의 지혜에서 시작된 것이다. 대부분 강을 물을 건너야 하는 곳에 다리가 있는 것이다. 혹은 산이 가로 막혀 있으면 돌아가야 해 이를 연결시키는 것은 터널일 것이다.
18세기 유럽 최고의 문화 도시는 이태리의 베니스였다. 베니스는 본래 150여개의 섬으로 갯벌과 바닷물로 척박한 땅이었으나 이곳에 410개의 다리로 연결 한 도시를 만든 것이다. 돌아가야 할 땅을 연결함으로 한 동리가 된 것이다.
오작교란 까마귀 다리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견우와 직녀를 위해 음력 7월 7일 세상의 모든 까마귀들이 나래를 펴서 다리를 만들어 준다 하여 견우는 그 까마귀 다리를 밟고 중간에서 직녀를 만나는 것이다. 만날 수 없는 거리를 다리로 연결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긴 간격은 미국과 한국이라는 태평양의 거리가 아니라 이승과 저승의 거리 아니겠는가. 일컬어 영원한 거리이다. 한국에 굿중 다리 굿이 있다. 상징적 의미이겠지만 굿을 통해 이승에서 저승까지 다리를 놓아 줌으로 영혼이 극락세계에 이르도록 하는 굿이다.
한강은 서울의 길이면서 장애물이기도 했다. 남과 북의 거리가 된 것이다. 이곳을 연결시킨 것이 한강 다리이다. 한강철교가 준공 된 것이 1900년이란다. 그 후 제 2 한강 철교가 놓였고 한강 인도교는 1917년에 개통되었단다. 지금이야 20여개 이상의 다리가 이 한강을 남과 북으로 혹은 동서로 연결 했지만 6.25 당시만 해도 유일한 다리는 한강 인도교였다. 이곳으로 사람이 짐들이 자동차가 오가고 한 것이다. 나중에 광진교도 세워 졌지만 말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전면 침략 전쟁을 일으키고 3일 만에 서울을 함락 시킨다. 6월 28일이었다. 전쟁이 나자 서울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 남으로 피난길이 줄이 이어졌다. 국군은 임진강 다리를 폭파 실패로 인하여 삽시간에 북의 탱크의 길을 열어 준 것에 대해 뼈아픈 교훈으로 한강인도교의 폭파 계획을 수립하였다. 한강 인도교만 아니라 당시 3개 철교와 광진교까지를 함께 폭파할 계획이었다. 28일 새벽 4시가 D-타임이었다. “폭파에 실패하면 총살” 이라는 명령을 육군참모 총장은 당시 공병감 최장식 대령에게 전달하고 담당 장교에도 전달된다. 그러나 적의 탱크가 새벽에 이미 서울에 나타남을 듣고는 서둘러 TNT3600 파운드로 인도교를 폭파한 것이다. 한강으로 남과 북의 연결이 끊어진 것이다. 계획보다 2시간 앞서 하느라 허둥지둥 했단다 더구나 철로는 완전히 끊어지지 않아서 그길로 북한 탱크가 한강을 건너 왔단다.
이날 새벽 서울엔 폭우가 쏟아졌단다. 깜깜한 어둠을 뚫고 시민들은 한강 인도교로 모여들었다. 이미 정부가 수원으로 이전 했다는 것에 더 이상 기댈 것 없어 피난했던 것이다. 당시 인도교는 4천여 사람과 차량들이 한 발짝도 떼기 힘들던 시간 갑자기 천지를 흔드는 소리와 함께 불기둥이 치솟았다. 인도교가 두 동강 나면서 그 위에 있던 사람들과 차들이 산산이 흩어지면서 시커먼 강물 속으로 떨어진 것이다. 살겠다는 일념으로 다리를 건너던 사람들 중 거의 천여 명이 까닭도 모른 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전쟁의 비극이다. 당시 서울 인구가 백만이라는데 지금으로 친다면 만여 명이 한꺼번에 죽은 것이다. 뉴욕의 9.11 사건으로 3천여 명이 생명을 잃은 것에 비교된다. 하기사 삼풍백화점 붕궤로도 1300명 죽었었나.
정말 아쉬운 것은 아무리 당황했어도 일단 인도교 입구를 막고 통행금지를 내리고 이미 인도교 안으로 들어 간 사람들 빨리 나가게 하는 조치 즉 한 시간 정도면 가능했을 텐데 참 억울하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생명을 경시 여긴 것 아닌가.
지난 6월 28일 이 폭파로 인해 죽은 사람들을 위해 이 이름 없이 한줌의 재로 수장된 사람들을 위한 위령제가 60년 만에 희생자 추모 진혼제가 한강 강변 부지에서 열렸단다. 참 억울했으리라. 불교적인 생각으로 원한의 영들이 아직도 제자리 잡지 못하고 한강 주위에 맴돌아서 한강으로 뛰어들어 자살한 사람들 많았던가.
더욱 아픈 것은 이 명령을 하달 받아 폭파했던 공병감 최창식 대령이다. 폭파 후 여론이 들끓자 정부에서는 희생양으로 “실패하면 총살이야” 명령 받아 복종 했을 뿐인데 모든 책임을 그에게 덮어 씌우고 50년 9월 16일 부산에서 사형 당했던 것이다. 3개월 만이었다. 아내가 되는 옥정애씨 남편의 시체를 찾으려 했으나 시신조차 돌려받지 못한 아픔을 견디며 몇 번씩 탄원하여 마침내 14년이 지난 1964년 10월 군법회의에서 무죄선고 명예 회복이 되었단다.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인간에게 가장 먼 거리가 어쩜 인간과 하나님 사이 아니겠는가. 본래 에덴에서는 서로 왕래 가능했지만 사탄의 유혹과 인간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과 오갈 수 있던 다리가 단절된 것이다. 어쩜 죄가 TNT와는 비교할 수없는 파괴력으로 폭파시킴으로 그래서 인간은 영영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죽음의 존재가 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사이의 갈라놓은 것은 다리를 끊는 것이고 그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죽어간 것이다. 비극이 눈물이 억울함이 기가 막힘이 그래서 시작 된 것이다.
여기 새롭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교량된 것이 십자가다. 예수의 붉은 피 흘리신 십자가다. 이로 인해 다리는 다시 이어졌고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긴 다리 교량이 십자가다.
다시금 이 다리에 TNT를 설치 하여는 무리들이 있으니 분명 사탄의 짓 아니겠는가. 멀쩡한 사람을 죽이는데 앞장서고 목사를 파직으로 죽이고 502명의 생명을 죽이는 일은 결국 다리를 은혜의 교량을 파괴하는 일일 것이다. 복음은 죽이는 일이 아니라 살리는 일이다. 살리기 위해 당신은 직접 십자가 지신 것이다. 그 십자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량이 되시기 위해서이다. 그 뒤를 따른다는 믿음의 사람들도 교량 역할 하나님과 이어질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거기에는 희생이 손해가 따를 수밖에 없다. 자기의 이기심을 충족키 위해 끊임없이 교량을 파괴하려는 무리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데...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이 모든 것 아신다. 여름은 더욱 깊어가는구나.
|
|
|
|
|
 |
|
|
|
|
 |
 |
 |
 |
 |
 |